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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장애인은 질환자가 아니다
인간의 본질은 어떤 하 나의 차원 - 그것이 육체적 차원이든 심리적 차원이든 간에 고정적·결정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철학적 인간학에서처럼 인간을 발달적 혹은 변 화 무쌍한 존재로 인식한다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장애인은 질환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일반인들은 장애를 병(病) 혹은 병을 앓은 후에 생긴 결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설혹 장애인이 병과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철학적 인간학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전혀 문제 가 되지 않는다. 바이체커(Weiszacker)가 병이란 '인간의 존재 방식'이라고 말한 것처럼, 인 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병자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장애를 병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으로 간주한다면,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철학적 인간학의 관점에서 장에는 보편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 혹은 편견은 철학적 인간학의 세계에서만큼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한국인의 장애인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기도 한다. 한국인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 의 형성 요인으로, 보편 인간의 지향, 완전 인간의 지향, 욕구불만의 전위(轉位), 초자아의 결 여, 전통 복지법의 해이 등을 들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힘이 세고 건장한 사람이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신체가 완전하지 못 한 장애인들은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완전주의를 지향하 여 책을 사더라도 한 질로 사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완전하지 못한 장애인들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학문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장애 인관이 부정적이라는 자조적인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이 말을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장애인 혹은 장애인 시설 거부 현상을 두고 한국인의 장애 인관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땅값, 집 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결사적으로 반대하거나, 장애아 통합교육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것 등이 모두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다. 서울의 어느 백화점이 무너진 후, 어느 신도시의 아파트에 대한 안전 점검을 실시하겠다고 하니까 주민들이 반대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명까지도 고려하지 않은 물질 만능의 사고 결과인 것이다. 하물며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반대하는 것쯤이야 다반사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말은 가족의 생명보다 돈을 더 소중히 여기는, 최소한 그 러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또한 장애아동의 통합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반드시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 단정 짓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자 녀 교육에 온 힘을 쏟아붓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자녀 교육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장애아동들이 혹시라도 공부를 방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부모들과는 달리 장 애 아동들에 대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물질 만능에 사 로잡힌 어른들일뿐이다. 여하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해 부정적이다' 혹은 '한국인은 장애인에 대한 편 견이 심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더 많다. 오천 년 유구한 역사 동안, 우리 민족은 자신보다 더 못한, 더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하면서, 더불어 살아온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동정심이 많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서인가? 그런데 장애인 혹은 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동정은 싫다!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 달라!" 요구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동정은 앞에서 말한 우리 민족 고유의 름다운 정서로서의 동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이 거부하는 동정이란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한 동정심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길거리에서 마주친 거지에게 500원짜리 동전을 던져 주고 갈 때, 우리는 그를 매우 동정심이 많은 사람으로 여기기 쉽다. 실제로 대부분 사람들 은 자신이 던져 준 500원짜리 동전이 상대방의 삶에 진정 보탬이 되기를 원해서 그렇게 한 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보다는 단순히 오늘 착한 일을 했다는 자기만족적 감정에 사로잡혀 스스로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장애인들은 바로 그와 같은 자기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동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인을 동정하는 것을 주저하면 안 된다. 좋은 의미의 동정심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계속 지속해 나아가야 할 자랑스러운 민족 정서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 등 서구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한 인권 사상이 매우 높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자괴적인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본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은 민족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고 더불어 살아왔다. 그와 더불어 인권 사상도 서구의 어떤 나라들보다 못하지도 안 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난 지 1년이 되면 두 살이라고 한다. 어머니 뱃속에 있던 10개월을 한 살로 쳐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태아도 인격을 지닌 엄연한 '사람'으로 간 주하는 셈이다. 그런데 서구에서는 나이를 말할 때, 몇 년 몇 개월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 면 태아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사회는 장애인 천국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장애인에 대한 인권 존중이 높아서도 아니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어 서도 아니다. 더욱이 본래 인권 사상이 더 높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법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법이 아니면 단 하루도 지탱하기 어려운 나라이다 보니, 장애인에 대한 대우도 법으로 정하기만 하면 잘 지켜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장애인관이 부정적이라고 결코 단정지을 필요가 없다. 또한 미국은 어떻고, 일본은 어떻다는 식으로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는 본래 불우한 사 람을 보면 도와주지 않고는 참지 못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아름다운 정서가 가득 차 있다. 언젠가는 그 마음들이 밖으로 표출될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우리 장애인들은 조금도 외롭지 않다.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지체인. 정의와 분류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정신지체라는 말은 여러 번의 변화 과정을 거쳤다. 아주 옛날에는 백치·천치·우둔 등이라 불리었고, 비교적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정신박약이라 하였다. 그러나 정신박약이라는 말이 치유 불가능의 기질적 장애라는 의미가 강하여 정신지체라는 말로 대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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